지금 우리에게 무엇이 부족한가. 단지 남들처럼 살려고 하는 상대적 빈곤감과 욕심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이다.
능력이 없어 욕심이 닿지 않으면 마음을 고처먹고 편해 질 줄도 알아야 한다.
- 도현. <조용한 행복> 중에서
아버지 사업이 망하기 전까지 나는 부잣집 외동아들이었다. 의식주 무엇 하나 부족하지 않았다. 그런데 돈을 손에 쥐어 본 기억이 없다. 어머니는 부족함 없는 환경을 만들어 주었지만 아들이 돈을 만지는 것을 싫어했다. 학교에 낼 돈이 있으면 꼭 봉투 안에 넣어 주었다. 아마도 어머니는 아들이 돈을 모르기를 바라셨던 것 같다. 결혼한 뒤에는 아내에게 월급봉투를 주고 용돈을 타 썼다. 아내 또한 내 어머니처럼 돈에 관한 모든 것을 알아서 관리해 주었다. 평생 그렇게 살았다. 정년 때 받은 퇴직금이 얼마였지 조차 모른다. 부끄럽지만 나는 두 여인 덕분에 돈을 몰랐다. 돈이 늘 넉넉했던 것은 아니었다. 돈이 없어 아이들 장난감도 사 주지 못해 서글펐던 적도 있다. 하지만 돈 때문에 힘들고 괴로워 했던 기억이 없다. 천성적으로 나는 돈에 대해 무감각 했다. 돈을 중심으로 인생을 설계한 적도, 돈을 많이 벌겠다거나 부자로 살고 싶은 생각은 단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다.
1980년대 부동산 광풍이 몰아칠 즈음, 당시 집 한 채 값의 적금을 타서는 아내와 함께 유럽 여행을 떠나 몽땅 써 버렸다. 가난한 남편에게 시집와 산에서 텐트를 치고 신혼 첫날밤을 보내야 했던 아내에게 세계 여행을 시켜 주겠다던 약속을 지킨 것이 었다. 만약 그때 그 돈으로 말죽거리 어딘가 땅을 샀더라면 수백 억대 자산가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돈이 있으나 없으나, 말죽거리 땅이 내 것이든 아니든 나의 일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솔직히 말해, 결혼 당시 주머니가 넉넉했다면 산에서 텐트 치고 야영하면서 신혼 첫날밤을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시 내 형편이 그랬다. 내 수중에 있는 돈으로 가능한 신혼여행을 계획하고 떠난 것뿐이다. 그런 내 처지에 화가 나거나 열등감 따위는 없었다. 모든 게 자연스러웠다. 조금만 미안해하지 않는 나의 뻔뻔함에 아내가 서운했다는 말을 뒤늦게 했을 정도였다.
돈암동 산꼭대기에 전셋집을 처음 마련했을 때도 그랬다. 아내의 알뜰함으로 장만한 우리 집에서 처음 자던 날 밤, 벅찬 기 쁨 속에 오늘의 마음을 잃지 말자고 다짐했다. 몇 십 년이 흘러 그때보다는 훨씬 부자가 되어 그 집을 다시 찾았을 때 나는 좀 놀랐다. 이 작고 허름한 집을마련하고는 그토록 좋아했다는 게 믿겨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집에서 보낸 첫날 밤 ‘오늘의 마음’ 을 잃지 말자던 나와의 약속이 지금, 현재에 만족할 줄 아는 마음이었음을 나는 비로소 알았다. 돈이 나를 시험한 적도 있다. 네팔 의료 봉사를 오랫동안 잘 했다고 모 방송국에서 나에게 사회봉사상을 주었다. 상금이 천 만 원이었다. 상금 이야기를 듣고 이틀을 고민했다. ‘천만 원을 어디에 쓸까? 애들 데리고 나가서 근사한 밥을 사줄까? 집을 고칠까? 아니 그 정도는 어림없다. 천만 원에 맞게끔 쓰려면 어디에 써야할까?’ 잠이 안 왔다. 천만원 갖고도 이렇게 온갖 머리를 굴리는데 10억, 100억을 두고 벌어지는 부모 자식 간의 싸움이 이해가갔다. 수상 소감문을 쓰라기에 책상에 앉았다. 상금이 천만 원이란 소리를 듣고 난 뒤부터 일어난 내 생각의 변화를 적어 나갔다. ‘환장할 것 같다’부터 시작해서 온갖 상상의 나래를 적었다. 그 리고 마지막에 상금을 네팔 봉사 캠프에 기증하겠다고 썼다. 그러고 나니 잠이 왔다. 나의 상금 기증 소식에 사람들이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반만 들어야 하는 칭찬이었다. 대학교수, 의사, 직함을 달고 온갖 사회적 혜택을 누리면서도 상금으로 받은 천 만원까지 모두 가지려고 했다니, 참 치사한(?) 짓이었다’ 분수를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내 형편을 알고 그에 맞게 사는 것이다. 모자라지도 않으면서 더 많이 욕심을 내는 것 또한 분수를 모르는 것이다. 내 형편에 천만 원은 없어도 되는 돈이었으니, 나는 분수를 모를 뺀했다. 많이 가지기를 바라는 순간 부족해지는 이치다. 그런데 요즘 세상에서 돈의 중요성만 강조되다 보니 반대로 돈이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도 만만치 않다. 돈과 물질을 배타적으로만 보고, 행복에는 꼭 돈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런 이야기를 지꾸 듣다 보면 돈의 의미가 왜곡된다. 가치 있는 돈마저 외면해 버리게 된다. 그래서 돈을 많이 가져도 행복하지 않고 돈이 없어도 노력하지 않게 된다. 그러나 자본주의 시회에서 돈이 행복을 주지 않는다는 말은 미친 소리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데 1순위는 돈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돈을 제대로 다루는 훈련이다. 나는 부모에게서 그런 훈련을 받지 못했다. 나의 손자들은 어리지만 돈에 대한 분명한 목적을 갖고 있다. 돈으로 뭐할거냐고 물으면 나름대로 계획이 있다. 그렇게 차곡차곡 주체적으로 돈을 다루는 법을 알아 가면 돈에 휘둘리지 않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언제나 돈을 부족하다고 느끼지 않을 것이다.
노년은 돈이 가장 중요하게 느껴지는 시기다. 노동력이 줄어 들면서 돈이 부족해지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돈 때문에 눈물 안 흘리려면 젊어서부터 돈에 대한 내공을 쌓아 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100억이 생겨도 행복하게 쓸 줄 모르며, 돈이 없으면 불 행하다 여기고 더 쉽게 절망에 빠지게 된다. 돈에 대한 균형감이 진짜 행복을 만들어 준다. 노후에 유용하 게 쓸 수 있는 것은 지난날의 저축이다. 그런데 돈만 저축할 게 아니라 마음도 저축해야 한다. 돈 없으면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각오도 다져야한다. 돈만 저축하면 노후가편할지 몰라도마음 을 저축하지 않으면 돈이 있어도불행하다. 자본주의는 겁을 준다. 노년에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 안락한 노후를보낼 수 있다고 재촉한다. 여행도 가고 골프도즐기고친 구도 만나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자식이나 다른 사람들로부터 업신여김을 당하지 않으려면 돈이 필요하다. 돈이 있어야 품위 있는노년을보낼수 있다 모두틀린 말은아니다 그러나 돈이 없다면? 돈이 떨어진다면? 그 이후를 생각해야 한다. 여행은 안가도그만이다. 자동차도 버릴 수 있다. 돈이 없 다고 대우해 주지 않는 곳은 안 가면 그만이다. 노후를 앞둔 사 람들에게는 돈보다 이런 각오가 더 중요하다. 인간 수명 100세다. 준비할 것도 많지만 이런 마음가짐도 저축해 두면 더 든든하지 않겠는가.
출처: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싶다. / 이근후(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갤리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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