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지게 나이 들고 싶은 사람들은 위한 인생의 기술 53
저도 중년에 들어서면서 뒤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살아왔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동안의 삶에서 느꼈왔던 감정들이 이책의 내용에 동화되는 느낌이 들어서
잇님들도 최선을 다해서 산다는게 우리에게 어떤것을 가져다 줄지 한번쯤 곰곰히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한번뿐인 인생 행복하고 즐겁게 살아야지 않겠습니까.
실수와 불행은 자기 능력보다 120% 해내려는 데서 시작한다. 우리에게는 80%의 능력 발휘를 목표로 세울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120에 도달하지 못했을 때의 절망감, 80% 이상 해냈을 때의 뿌듯함, 그 다음에 이어질 자신감은 어느 선택에서 커질까.
-크리스티네 바이커·카롤라 쿠퍼, 《삐삐의 법칙》 중에서
언론 인터뷰 때 꼭 받는 질문이 ‘좌우명이 뭐냐. 삶의 철학은 무엇이냐’는 것들이다. 평생 마음이 아픈 환자들을 진찰하고. 학생들을 가르쳐 온 노학자에게 무언가 삶의 특별한 비결이 있을거라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철학은 정장 입은 상식’ 이라는 말이 있듯, 밥 먹고 일하고 공부하는 일상의 상식이 철학이다. 그런 점에서 특별히 내세울 만한 삶의 철학은 없다. 그래도 굳이 묻는다면 나의 답은 언제나 같다. “차선次善으로 살자.” 그러면 상대는 좀 뜻밖이라는 듯한 표정으로 되묻는다. 세상은 최 선을 다해 살라고 하는데 왜 당신은 차선으로 사느냐고, 나는 ‘최선’ 이라는 말이 싫다. 최선은 내가 가진 100을 다 쓰라는 말이다. 그러면 씨앗을 먹어 치운 농부처럼 내일을 기약할 수 없게 된다. 차선이라고 해서 적당히 하다가 내키는 대로 그만 두는 것은 아니다. 무엇이든 완벽에 매달리기보다 잘하는 정도에서 즐기고 만족한다는 뜻이다. 최선을 다하자고 하면 1등, 최 고를 추구하게 되고 그것은 경쟁을 부추길 뿐 행복감을 주지는 못한다.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전교 1등을 하고 싶어 정말 열심히 공부 했다. 잠도 줄이고 책상에만 붙어 있었다. 수학 실력이 부족해서 교과서에 나온 문제 유형을 아예 통째로 외워 버렸다. 1등을 했다. 그러나 기쁨은 잠시였다. 다음 시험에서 밀려날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어린 미음이었지만 최선을 다하는 삶이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구나, 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차선으로 살아서인지 나는 무슨 일이든지 오래도록 꾸준히 하는 습관이 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미술반에서 그림도 제법 그렸고, 시인을 꿈꾸기도 했다. 그러나 대학 진학을 앞두고 내가 화가로서 창의적인 자질이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한 결과 아니라는 답을 얻었다. 좀 더 연습하면 솜씨가 늘긴 하겠지만 나에게 근본적인 예술가적 자질은 없는 것 같았다. 뼈아픈 자기 성찰이었다. 하지만 그림과 시로 다른사람의 인정을 받을 수는 없어도 내가 즐길 수는 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시를 멋지게 쓰지는 못해도 다른 사람이 쓴 좋은 시를 알아보고 즐겨 읽을 수 있어 좋았다. 대학에 입학한 뒤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나의 주도로 대학 산악부가 만들어졌고 1982년 히말라야에 올랐다. 당시에는 산은 정복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달랐다. 나는 등산하는 행위 자체에서 기쁨을 느꼈다. 그래서 매번 즐겁고 유쾌한 기분으로 산에 안겼다. 정상을 목 표로 오르는 도중에도 눈이 많이 오거나 하면 그 길로 산을 내려왔다. 정상에 오르지 못한 아쉬움 대신 그림처럼 아름다운 설경을 감상하는 또 다른 즐거움을 얻었구나 생각했다. 네팔 의료 봉사를 시작하고 네팔 캠프를 열어 우리나라와 네팔 문화 교류를 활발하게 만들었는데, 이 또한 정상등정이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기능했던 일이다. 산을 오르면서 네팔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을 도와 주고 싶은 마음이 우러나 의료 봉사를 시작했다. 또 그들의 삶을 직접 접하고 대화를 나누면서 네팔의 역사와 문화 수준이 높음을 알게 되었고, 이를 우리나라에 소개하기에 이른 것이다. 의사가 된 뒤에도 그림과 시와 산은 늘 함께했다. 환자 치료에 그림과 글을 응용했다. 지금 생각하면, 의사로 일하면서 기본적인 의학적 치료에 더하여 예술적인 환경을 만들어 치료 효과를 높인 것은 나의 예술적 감수성 덕분이 아닌가 싶다.
보육원 봉사를 하면서 ‘무하문화사랑방’을 열게 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불우한 아이들에게 단지 의식주만 해결해 주는 것을 넘어, 시와 그리을 통해 문화적 감수성을 키워 주고 긍정적인 성격을 만드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한 것이다. 직접 쓴 시와 산문을 발표하는 아이들의 얼굴에 넘쳐나는 자부심과 만족감은 고스란히 나의 기쁨이 되었다. 또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달마다 한 번씩 가졌던 시 낭송 모임은 벌써 14년 넘게 이어져 오고 있다. 이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늘 나의 능력을 30퍼센트 가량 아껴 두었기 때문이다. 한 가지를 완벽하게 해내려면 그 일에 시간과 능력을 전력투구해야 한다. 1등을 하기 위해 바닥까지 짜내다 보면 옆을 바라보지 못하게 된다. 풍경의 즐거움도, 인생의 다른 가치도 놓쳐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애면글면 경쟁하며 최고가 되려는 노력을 조금 덜어내 여유를 갖고 살면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즐길 수 있다. 인간애, 즐거움, 가족애, 봉사심, 일의 성취감 등 그 가지치기는 무한하다. 삼청동에 ‘서울에서 두 번째로 잘하는 집’이라는 찻집이 있다. 최고, 원조를 내세운 가게들이 즐비한 가운데 이 집 상호는 유난히 눈에 띈다. 주인장은 겸손한 마음을 표현하려는 의도였겠지만 손님으로 하여금 최고의 맛이 아니더라도 기꺼이 먹어 보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단지 맛이 아니라 뭔가 이야기가 있을 것 같고, 그 이야기를 천천히 듣고 싶은 마음에 그 찻집에 가 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남이 봐서 1등이다. 2등이다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직 경쟁에만 집중적으로 힘을 쏟을 필요가 없으며, 자신이 하는 일에 만족하면 그뿐이다. 그러면 수 많은 이야기, 수많은 일들이 가지치기를 한다. 지금 나는 건강 때문에 산 높은 곳까지 오르지 못한다. 네팔에 가도 가벼운 트래킹 정도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손에 잡힐 듯, 코 앞에 다가서 있는 봉우리들, 그 봉우리에 올랐던 때의 이야기들을 떠올린다. 그것만으로 즐겁다. 삼청동 연구실에서 멀리 북한산 인수봉을 바라만 봐도 좋다. 산을 다리가 아니라 눈으로 즐긴다! 산에 오르지는 못하지만 산을 바라볼 수 있는 차선의 기쁨을 즐긴다고 할까. 그것은 나에게 또 다른 차원의 즐거움이자 아직 나에게 허락된 즐거움이다. 세월이 흘러 자리에 눕는 날이 오게 되더라도 나는 침대 위에서 히말라야 동영상을 보며 머릿속으로 신나게 등반할 것이다.
출처: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싶다. 이근후(이화여대명예교수)지음/출판사 갤리온
지은이 소개 [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
1950년대 고등학교 시절,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집안 헝편이 어려워지면서 혼자 모든 걸 해결해야 했던 젊은이가 있었다. 그는 대학 시절 419와 5.16 반대 시위에 참가해 감옥 생활을 한 덕분에 한동안 취직이 어려워 생활이 힘들었던 적도 많았다. 취직 후에도 빚을 갚고 자식 넷을 낳고 키우느라 젊은 시절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쉽게 절망하는 법이 없었다. 몇 차례 죽음의 위기를 넘기며 살아 있는 것 그 자체가 감사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이화여자대학교 교수이자 정신과 전문의로 50년간 환자를 돌보고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리고 76세의 나이에 고려사이버대학 문화학과를최고령으로 수석 졸업하면서 세간에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은퇴 후에 다시 학생이 되어 배움의 길에 들어선 그는 그저 웃으며 ‘일흔 넘어 한 공부가 가장 재미있었다’ 라고 말할 뿐이다. 30년 넘게 네팔 의료봉사를 하고, 40 여 년 넘게 광명보육원 아이들을 돌본 이유도 별게 없다. 봉사를 하니까 인생이 더 즐거워졌다는 게 이유의 전부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의 몸상태를 알고 나면 깜짝 놀란다. 그는 10년 전 왼쪽눈의 시력을 완전히 잃고 당뇨, 고혈압, 통풍, 허리 디스크 등 일곱 가지 병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그럼에도 그는 퇴임 후 아내와 함께 사단법인 가족아카데미아를 설립하여 청소년 성상담, 부모교육, 노년을 위한 생애 준비 교육 등의 활동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로 폐쇄적인 정신 병동을 개방 병동으로 바꾸고, 정신 질환 치료법으로 사이코드라마를 도입했으며, 한국 정신치료학회를 설립하는 등 우리나라 정신의학발전에 공헌한 바가 크지만, 그는 그것 또한 필요한 일이고 하고 싶어 했을 뿐 대단한 일이 아니라고 잘라 말한다. 또한 그는 한 여자의 남편이자 네 아이의 아버지로 살아오면서 절대 자식 인생에 간섭하는 부모는 되지 말아야지 마음먹었더랬다. 현재 그는 결혼한 자녀 부부와 네 명의 손자 손녀까지 모두 삼대 열세명이 한 집에 모여 사는 대가족을 이루고 있는데, 그 화목함의 비결은 딱 하나다.
각기 독특한 개성을 지닌 식구 전체가 행복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시아버지로서 며느리에게 거절하는 법부터 가르칠 정도로 상호 불간섭주의와 독립성 보장을 지켜오고 있따. 그랬더니 오히려 가족간 허물없는 소통이 이루어졌다며 즐거워한다.
여든을 앞둔 지금도 그는 하루하루 사는 일이 재미있다고 말한다. 공부를 하고 청탁 원고를 쓰고 제자들에게 안부 메일을 보낸다. 찾아오는 이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그리운 이들에게 연락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앞만 보며 달렸던 젊은 시절에는 몰랐던 즐거움이다.
누구나 즐겁고 재미있게 인생을 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진짜로 인생을 즐기는 살마은 재미있는 일을 선택하는 사람이 아니라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어도 재미있게 해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 순간순간이 쌓여 진짜 재미있는 삶을 만든다. 그래서 인생의 새로운 출발점에서 '어떻게 살것인가'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말한다.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것이므로 나이 드는 것을 너무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그리고 좀 두렵더라도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겠다'는 다짐을 잃지 말라고, 그것만으로도 인생은 훨씬 풍요로울 수 있다고....
엮은이/김선경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출판계에 입문하여 월간 <좋은생각>, <좋은친구>, <행복한동행>, <문학사상>, 기업 사보 등 월간지와 단행본을 두루 만들었다. 직접 쓴 책으로 20만 명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서른살에는 미쳐 몰랐던 것들>이 있다. 마흔 살에 접어들면서 본격적으로 "어떻게 나이 들어 갈 것인가'를 고민한 끝에 이근후 명예교수와 함께 이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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