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가장 큰 행복을 가져다주면서, 동시에 가장 큰 불행을 안겨주기도 하는 것은 바로 사랑이란 감정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이성이든, 선배이든, 후배이든, 아니면 자식이든 간에,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의 이면에는 그도 나를 사랑하기를 원하는 무의식적인 욕망이 깔려 있기 마련이다. 물론 겉으로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렇지만 이것으로 만족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사랑받는다는 것! 이것이 사랑이란 감정을 가졌을 때 우리가 소망할 수 있는 가장 행복한 경우일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태는 삶에서 빈번하게 발생한다. 바로 여기에 사랑이 낳을 수 있는 불행이 도사리고 있다.
이 경우 우리는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된 것 자체를 신의 저주라도 되느는 양 후회하게 된다. 그렇지만 사랑이란 감정이 낳을 수 있는 더 큰 불행이 있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것이 상대방에게 행복을 안겨주지 못하고, 오히려 불행을 선사하게 될 수도 있다. 장자莊子,BC369-BC289?라는 철학자가 중요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사랑이 낳을 수 있는 가장 큰 불행에 직면해서, 사랑하는 사람과의 소통을 꿈꾸고 있기 때문이다. 장자가 우리에게 주는 지혜를 배우기 위해서 먼저 ‘바닷새 이야기’ 라고 불리는 다음 에피소드를 꼼꼼하게 읽어볼 필요가 있다.

너는 들어보지 못했느니? 옛날바닷새가 노나라 서울 밖에 날아와 앉았다.
노나라 임금은 이 새를 친히 종묘 안으로 데리고 와 술을 권하고,
아름다운 궁궐의 음악을 연주해주고, 소와 돼지, 양을 잡아 대접 하였다.
그러나 새는 어리둥절해하고 슬퍼하기만 할 뿐,
고기 한 점 먹지 않고 술도 한잔 마시지 않은 채 사흘 만에 결국 죽어버리고 말았다.
이것은 자기와 같은 사람을 기르는 방법으로 새를 기른 것이지,
새를 기르는방법으로새를 기른것이 아니다.
장자 지락 子非魚焉知魚之樂/『장자』 「지락(至樂)」
방금 읽은 에피소드는 노나라 임금이 새를 비극적인 죽음으로 몰고가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바닷새를 죽음으로부터 구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분명 몇몇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방법을 떠올릴 수 있다. ‘바닷새를 궁궐에서 키우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 풀어주어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바닷새는 아무런 스트레스도 받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수명을 다할 수 있을 테니까.’ 그렇지만 과연 방금 제안된 방법을 노나라 임금은 채택할 수 있을까?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왜 노나라 임금은 바닷새를 자연에 풀어주라는 충고를 따르지 않을까? 그것은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노나라 임금이 새를 무척 아끼고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나라 임금은 바닷새를 자신의 가까이에 두고 싶었고,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의 방법으로 바닷새를 사랑했던 것이다. 그런 노나라 임금에게 바닷새를 자연에 풀어주라는 충고는 귀에 들어올 수조차 없는 조언일 뿐이다.
처음 읽을 때 ‘바닷새 이야기’는 아주 단순한 이야기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사랑이 얼마나 심각한 딜레마를 내포하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사랑을 잃지도 않고 동시에 사랑히는 대상을 죽이지도 않는 방법은 무엇일까? '바닷새 이야기’가 보여주는 것처럼, 사랑은 항상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사랑은 때때로 사랑하는 타자를 죽음으로 내몰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유로 인해 이런 비극적인 결말이 생기게 되었을까? 그것은 노나라 임금이 사랑하는 새에게 좋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오히려 그 새의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는 치명적인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노나라 임금이 새에게 베풀었던 애정을 한번 생각해보자. 맛있는 술 권하기, 궁정 음악 연주 해주기, 맛있는 고기 먹이기 등등. 인간이라면 누구든지 이런 호의를 받고 기뻐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새에게는 이런 것들이 모두 괴로운 시달림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래서 결국 사흘 만에 노나라 임금의 애정 표현에 놀란 바닷새는 슬픈 최후를 맞게된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하기에 앞서, 그가 누구이며 그리고 무엇을 원하는 지를 알아야 한다. 그렇지만 불행히도 우리는 누군가를 알아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그를 알려고 하는 존재이다. 우리가 ‘타자란 무엇인가, 라는 문제를 숙고해야만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철학적으로 말한다면. 타자란 우선 나와는 다른 삶의 규칙을 가진 존재를 의미한다. 노나라 임금에게 바닷새는 바로 타자 였다. 어떻게 하면 노나라 임금은 바닷새의 속내를 독해할 수 있을 까? 장자의 대답은 ‘허虛’나 ‘망忘’이 란표현에 응축되어 있다. 여기 서 ‘허’ 가 비운다는 뜻이면, ‘망’은 잊는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모두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타자에 대한 선입견이나 편견을 비우거나 잊어버려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이제야 우리는 노나라 임금과 관련된 심각한 문제를 풀 수 있는 준비가 되었다. 노나라 임금이 사랑하는 바닷새를 놓아주지 않으면서 바닷새를 죽음으로 몰고 가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노나라 임금은 우선 “이렇게 하 면 바닷새가 좋아할 거야”라는 생각을 잊어야만 했다. 오직 그럴 때에만 노나라 임금은 바닷새가 던지는 암호들을 섬세하게 읽어낼 수 있는 마음을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소통이란 단어를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흔히 소통이란 의사소통을 상징하는 커뮤니케이션의 번역어 정도로 이해 되고 있다. 그렇지만 ‘트다’라는 뜻의 ‘소疏’와 ‘연결하다’는 뜻의 '통通’이란 글자로 구성되어 있는 소통이란 개념은 더 심오한 의미 를 가지고 있다. 소통은 구체적으로 막혔던 것을 터서 물과 같은 것이 잘 흐르도록 하는 작용을 나타내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노나라임금이 사랑하는바닷새를놓아주지 않으면서
바닷새를 죽음으로 몰고가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노나라 임금은 우선 ‘이렇게 하면 바닷새가 좋아할 거야’'라는생각을 잊어야만 했다.
‘ 오직 그럴 때에만 노나라임금은 바닷새가 던지는 암호들을
섬세하게 읽어낼 수 있는 마음을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통'이라는 개념보다 '소’라는 개념이 더 중요하다고 하겠다. 막혔던 것을 터버리지 않는다면, 물과 같은 것이 흐를 수 없다. ‘소’ 라는 개념은 우리 마음으로부터 선입견을 비운다는 것, 그러니까 장자가 말했던 ‘비움虛’이나 ‘잊음忘’과 같은 맥락에서 사용된다. 마음으로부터 선입견을 비워야만 타자와 연결될 수 있는 희망을 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노나라 임금처럼 타자를 죽음으로 몰고가는 비극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사랑의 비극은 막아야 한다. 사랑했기 때문에 사랑하는 타자를 파괴한다는 것! 이것보다 비극적인 상황이 어디에 있겠는가? 타자에 대한 선입견은 나와 타자 사이의 연결을 가로막는 것, 그래서 타자와 연결되기 위해서 반드시 제거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잊지 말아야할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마음을 비운다고 해서 타자와의 소통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나자신의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타자와 소통하기 위한 필요조건일 뿐 결코 충분조건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직 우리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즉 타자에 대한 선입견을 비우는 데 최선을 다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기다려야 한다. 사랑하는 타자가 나의 수줍은 손을 잡아주기를, 아직도 2,000년 전 중국 대륙에 살았던 장자라는 철학자의 목소리가 우리의 마음을 울리는 것도 다 이유가 있는 셈이다. 타자를 사랑할 때 사랑하는 마음을 제외한 일체의 마음을 비워야 한다. 오직 비어 있는 잔만이 술이 가득 차기를 희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출처:철학이 필요한 시간/강신주 지음/출판사 사계절
예수님과 동시대에 힐렐(Hillel)이라는 위대한 랍비가 있었는데, 어느 이교도가 “당신이 한 다리로 서 있는 동안 토라 전체를 암송할 수 있다면, 나는 유대교로 개종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고 한다. 힐렐은 “네가 싫어하는 일은 남에게도 행하지 말라. 이것이 전체 율법이고, 다른 것은 그 해석이다.”라고 하였다고 한다. 공자는 자공이 평생 동안 실천할 말을 묻었을 때 “그것은 서(恕)다. 자기가 바라지 않는 것이면 남에게 베풀지도 말아야 할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이 두 가지 가르침은 거의 비슷하다. 그리고 예수님은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마태 7:12)”라고 하였는데 이를 황금률(Golden rule)이라고 하고 앞 두 가르침을 은율(Silver rule)이라고 한다. 그런데 장자는 ‘타자가 원하는 것이 너와 다르다면 어찌할 것이냐?’라고 하면서 ‘타자가 원하지 않는 것을 타자에게 하지 않는다.’라고 한다. 즉 내가 생각하기에 상대방이 원하는 것, 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타자)이 실제로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언젠가 외국에서 유명한 교수가 내원하였는데, 강의가 끝나고 유명한 한식집에서 식사를 하였다. 우리 생각에는 우리나라 전통음식을 소개하기 위함이기도 하고 우리가 좋아할 뿐만 아니라 다른 외국 교수들도 좋아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하였는데, 이 교수는 아랍계 채식주의자로 육지동물은 물론 바다나 강에 사는 물고기도 먹지 않는 생활신조를 지키고 있어서 많이 당황한 적이 있다.
[출처] 장자 이야기와 굿닥터 2. 바닷새 이야기|작성자 달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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