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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맛집

[ 안양볼거리 ] 안양예술공원 內 '안양박물관 & 김중업 건축박물관 & 더테라스'를 한 공간에서 즐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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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의 대표 관광지라고 하면 '안양예술공원'을 빼놓을 수 없죠.

안양 예술공원은 멋거리, 볼거리, 산책, 등산, 박물관 등 즐길거리가 한 곳에 가득한 곳이죠.

오늘 소개드릴 곳은  안양예술공원 內 '안양박물관 & 김중업 건축박물관 & 더테라스' 입니다.

 안양박물관  

안양박물관은 

2017년 9월 안양예술공원 내에 개관하여 

선사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는

다양한 자료를 소장하고 있습니다.

📢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예술공원로103번길4, 안양박물관
📢 관람시간 09:30 ~ 17:30 (입장마감 17:00)
📢 매주 월요일, 신정•설날•추석 당일 휴관

김중업선생이 설계한 유유산업 공장 건물 중 하나로 현재는 안양박물관 상설전시실과 안내데스크, 사무실 등의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층 안내데스크, 카페

2층 상설전시실, 문헌자료실, 수유실

3층 사무실, 레스토랑

상설전시실은 박물관 2층에 위치하며 선사·고대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는 안양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공간입니다.

2층으로 올라가니 상성전시실에서는 청동기 유물, 삼국시대 토기, 안양의 출토유물, 고려, 조선시대 도자기 및 민속품, 근현대 시기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고, 다양한 모형, 영상자료를 관람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청동기시대 관양동 유적 및 삼국시대 토기로 알 수 있는 안양의 선사·고대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으며, 안양의 기원이 된 안양사지 유적 및 다양한 도자유물로 화려했던 고려시대 문화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또한 조선시대 양반문화 및 생활문화를 알 수 있는 다양한 소장품들을 통해 우리 민족 문화의 전승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혼란한 근대기 민족의 독립을 위해 힘쓴 지역 애국지사들의 활동을 알 수 있는 유물과 근현대기 안양지역 사람들의 모습을 알 수 있는 다양한 자료를 통해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고 있습니다.

우와 안양이 옛날에는 안양면이였는데, 읍으로 시로 승격되었네요.

안양 관양동 청동기 주거유적지

청동기시대의 문화상 및 생활상을 복원할 수 있는 중요한 유물

농경문화의 발달

석기시대에 수렵, 채집의 의존도가 

대동금석서, 안양사 칠층석탑, 전돌, 연봉행장식 

 

'안양사' 명 명문기와

안양사지 출토 도자

아름다운 우리 도자

청자, 백자, 분청자

조선시대 문화의 전승

미니어처로 만들어진 정조대왕 어가행열

조선시대 안양지역은 정조의 능행차로 인해 만안교가 축조되어

그 중요성이 더욱부각되었다.

정조는 아버지사도세자의 능을 참배하기위해 수원을 자주왕래하였다. 

당시 안양이 속하였던 과천과 시흥은 수원 능행로에 위지하여
국왕 일행을 위한 행궁이 지어지고 길이 정비되었다.

만안교가 세워진 후 시작된
답교놀이는 안양의 대표적인 민속놀이로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기념하기 위해 을묘년(1795년)에 진행한 대규모 행차에요.

어가와 말, 사람등이 세세하게 표현되어 있어 당시 모습이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제가 어릴때 모두 가지고 놀았던 전통 놀이기구네요^^

우측에 있는 것은 보름때 쥐불놀이 깡통이네 ~

 

안중근 열사님보다 먼저 이토 히로부미 암살계획을 세웠던 분도 있었네요

구한말 애국지사
원태우(1882.03.04~1950.06.25)/건국훈장 애족장


1882년 3월 4일 경기도 과천현 하서면 안양리(현 안양시 만안구 안양동
)의 농가에서 아버지 원태성(元泰成)과 어머니 이호순(李好順) 사이의 
무녀독남, 2대 독자로 태어났다. 
농민 신분이라 많이 배우지는 못했지만, 애국심과 의기는 무척 투철했다고 한다. 
을사조약에 분노한 그는 최초로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기로 결심했으며 이토 히로부미에게 
짱돌을 던져 중상을 입히는(!) 항거를 했다. 그때가 그의 나이 23살의 일이었다.

 

 

애국지사 이재현/건국훈장 독립장

조국의 독립과 민족의 자유를 위하여 일생을 바치신 안양출신 항일 애국지사 이재천·이재현 형제분

'투사는 지분을 요구하지 않는다'

이재현 선생의 “투사는 지분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온갖 고초에도 조국의 독립 이외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겠다는 마음이 엿보인다.

 

★ 우봉(牛峰) 이재천 지사(1913~?)는

경기도 시흥군 동면(현재의 안양시 석수동)에서 태어나 1919년 부친 이용환 선생을 따라 상해로 향했습니다. 그곳에 있는 동명학교에서 수학한 선생은 아버지의 뜻을 계승하여 독립운동을 이어나가기로 결심하고 1935년 중앙군관학교 졸업 후 그해 10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밀명을 받고 인천으로 입국 도중 일본 경찰에 체포, 1936년 2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와 대전 감옥에서 복역뒤 1940년 8월에 석방되었다는 기록이후에는 행방불명되어 그의 기록은 1940년인 28세에 멈춰있다고 한다.

 

★ 이재현(1917~1997)

이재천 선생과 함께 부친을 따라 상해로 건너가 상해 한인 인성소학교를 졸업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특별훈련반에 입대했습니다.

1936년, 선생은 김구 선생이 이끈 한국국민당의 당원으로 남경에서 활동했고, 이후 중경에서 조직된 한국청년전지공작대의 공작 조장으로 임명되어 활동했습니다. 이후 한국청년전지공작대는 광복군의 제5지대로 편입되면서 선생은 간부로 임명되어 중국의 하남성, 하북성 등지에서 장병들을 훈련하고 선전·정보수집에 힘썼으며 1944년 한미합작훈련인 OSS훈련의 무전반에서 훈련을 받았고, 이듬해 국내 침투공작을 위해 대기하던 중 광복을 맞이하여 고국으로 돌아와 1997년 2월 24일, 자택에서 별세.

정부는 이재천 선생에게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고, 동생 이재현 지사에게는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

- 출처 : 네이버

옛 유유산업의 공장건물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남겨진 24개의 기둥에 잊혀져 가는 안양의 기억과 '사라짐' 그 자체에 대해 이야기하는 설치작품, 기둥 중앙에 있는 조경 작품은 거북귀자를 형상화한 것으로 신라시대부터 비석을 세우기 위한 받침대여떤 귀부처럼 무언가 사라지고 난 뒤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기둥들을 받치고 있다. 24개의 기둥들 중 가운데 8개에 씌어진 조형물에는 수메르설형문자, 고대그림문자, 훈민정음, 중국문자와 같이 현재 거의 쓰이지 않아 사라져가는 여덟 개 민족의 문자들이 새겨졌다.

 

김중업 건축 박물관

 

1층 전시실

출처:시설안내 김중업건축박물관 (ayac.or.kr)

Prologue
김중업 건축박물관의 의의
Overvilew : Klmchungup Archltecture Museum


건축가 김중업(1922-1988)은 한국 현대 건축을 대표하는 1세대 건축가로, 세계 근대건축의 거장인 르 코르뷔지에의 파리 축 사무실 "아틀리에 르 코르뷔지에"에서 익힌 서양건축을 한국에 처음으로 도입하였다. 그것은 그 이전까지 식민지와 내전으로 인해 세계 현대견축의 흐름에 능동적으로 참여하지 못했던 한국건축이 건축가 김중업으로 인하여 본격적인 변화를 맞이하는 동시에 한국 현대건축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김중업건축박물관은 그가 설계한 공장건물을 리모델링하여 2014년 3월 28일에 개관한 국내 유일의 건축 전문 박물관이자 공립박물관이다. 

그는 선행된 건축양식에 안주하지 않고 서구의 건축양식과 한국의 전통 건축양식을 접목시켜 끊임없는 혁신을 추구하는 건축가였다. 김중업건축박물관은 김중업의 큰 아들(김희조 님)이 기증한 모형, 사진, 도면, 소품, 스케치,영상 통과 함께 건축의 다양한 곳에서 건축 자료를 기중받아 소장하고 있으며 학술적으로 가치가 있는 건축 자료들을 꾸준히 수집 및 생산하고 있다. 이를 활용하여 전시, 국제컨퍼런스, 어린이 건축학교 및 청소년.성인 교육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있다. 김중업건축박물관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시대를 앞서갔던 건축가 김중업처럼 다양한 변화를 추구하며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할 것이다.

우리나라 근대 건축계의 

거장 故 김중업 선생이 설계한 공간입니다.

김중업건축박물관은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에 위치한 ㈜유유산업 안양공장을 리모델링한 건물로, 우리나라 근대건축계의 거장인 故 김중업 선생이 설계하였습니다.

1층 전시관 : 안내데스크, 상설전시실

청년, 꿈을 키우다
Early Years and Education


건축과 예술에 대한 김중업의 관심은 유년시절부터 형성되었다. 김중업은 회고록에서 한국의 멋과 미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해 준 사람은 어머니었다고 적었다. 어머니의 단정한 옷매무새에서 느껴지는 선과 빛깔 그리고 한국의 건축미를 감상할 수 있는 미적 감각을 훈련할 수 있었고, 이를 향후 자신의 건축에서 표출할 수 있었다고 적었다. 또한 김중업은 맏형이자 서예가인 운여 김광업과의 각별한 우애를 다지며 예술에 대한 안목을 키웠다.
미술과 문학에 재능을 보이던 김중업은 1939년 요코하마 고등공업학교에 입학하여 건축을 공부하였다. 1924년 설립된 요코하마 고등공업학교 건축과는 나카무라 교수를 중심으로 에콜 데 보자르 전통을 따라 건축과 예술의 통합을 강조했다. 김중업은 요코하마 고등공업학교에서 디자인 중심의 커리쿨럼과 예술로서의 건축철학을 배우며 1941년 12월 수석졸업했다. 이후 마쓰다-히라타 사무실에서 건축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근대건축을 접하였다.

김종업은 1922년 3월 5일 평양에서 태어나 평양고등보통학교 재학 시절 미술교사의 권유로 건축을 전공하기로 결심하고 요코하마 고등공업학교 (현 요코하마 국립대학) 건축학과에 진학하였다. 졸업 후 마쓰다 히라다 건축사무소에서 실무를 익혔으며 해방 이후 서울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등에서 강의 하였다.
1952년 김중업은 유네스코 주최로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열린 제1회 세계 예술가대회에 한국대표로 참석하여 그의 건축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 르코르뷔지에를 만나 한국인 최초로 그의 사무실에서 일하게 된다. 이후 그는 3년 2개월 동안 이곳에서 프랑스 파리의 메종 자울, 인도 샹디갈 국회의사당 등의 여러 건축 설계에 참여하게 된다.
1956년 귀국한 김중업은 김중업건축연구소를 열고 홍익대학교에서 강의하며 부산대학교 본관, 서강대학교 본관, 건국대학교 도서관 주한 프랑스 대사관, 제주대학교 본관, 서산부인과 병원, 유엔묘지 정문과 채플, 삼일로 빌딩 등 한국 현대건축에서 중요한 작품들을 남기며 우리나라를 이끌어가는 건축가로 자리매김하였다.
그러나 1971년 11월 일련의 정치적인 사건으로 강제출국 당하여 프랑스와 미국에서 활동하였고 1979년 귀국 이후 1988년 5월 별세하기 전까지 한국 교육개발원 신관, 쇼핑센터 태양의 집, 육군 박물관, 부산 충혼탑, 서울 올림픽 평화의 문 등의 작품을 남겼다.
건축이란 인간에의 찬가이자 알뜰한 자연 속에 인간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바쳐진 또 하나의 자연이라고 했던 건축가 김업업은 한국을 대표하는 1세대 대표 건축가로서 한국에 모더니즘 건축을 직접 도입하여 한국 현대건축의 기반을 닦은 건축가로 평가받고 있다.

 

2층 전시실

도면의 춤

도면이 춤을 추는 영상인데 신기했어요

 

제주대학본관 건축

 

 

 

 안양박물관 3층 《더테라스 The Terrace》고급스러운, 점심식사, 야외테라스

안양 예술공원 맛집

위치는 안양예술공원 공영주차장옆

안양박물관 3층

식사와 음료 가능한 카페이고, 뷰가 아주 좋아요. 

오늘 우리가족이 주문한 메뉴는

부채살 스테이크, 까르보나라, 새우로제파스타

테라스에서 바라본 전경

점심 시간인데도 사람이 꽤 많이 오시네요

개인적으로 부채살 스테이크가 제일 맛있었어요.

맛있다고 우리딸이 1/3먹었네요 ㅎ

후식으로 커피와 오랜지 쥬스를 마셨어요. '무료'입니다.

오늘은 미세먼지도 없고 날씨도 너무 좋네요

식사 후 그네를 타는 모녀^^

 

마무리

오늘 안양예술공원 맛집인 더테라스에서 맛있는 식사도 하고 안양박물관, 김중업건축박물관의 전시물도 구경하고 모처럼 여유롭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더테라스에서 식사를 하고 안양박물관, 김중업건축박물관 관람도 하고 넓은 잔디밭에서 힐링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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